1990년대 후반 극장가를 찾았던 관객이라면,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쌍권총을 차고 미이라 군단에 맞서던 배우 브렌던 프레이저(Brendan Fraser)의 찬란한 전성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1999년 개봉한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미이라(The Mummy)》는 전 세계 4억 1,500만 달러(한화 약 5,600억 원)라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그를 단숨에 톰 크루즈, 윌 스미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액션 히어로로 쏘아 올렸습니다.
브렌던 프레이저는 19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과 조각 같은 이목구비, 그리고 어떤 위험천만한 스턴트도 유쾌한 유머로 승화시키는 독보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조지 오브 정글(1997)》에서 타잔 패러디로 전 세계 가족 관객을 사로잡았던 그는, 《미이라 2(2001)》에서 4억 3,500만 달러의 속편 흥행까지 성공시키며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에서 가장 막강한 티켓 파워를 가진 톱스타로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영광 뒤편에서 그의 몸은 서서히 부서져 가고 있었습니다. 스턴트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와이어에 매달리고 화염 속을 구르던 그는 《미이라 3》를 촬영할 당시 척추 테이핑과 얼음 팩을 온몸에 두른 채 촬영장에 서야 했습니다. 비극은 바로 이 절정의 순간에 시작되었습니다.
2003년 여름, 베벌리힐스 호텔에서 열린 골든글로브 주관 단체 외신기자클럽(HFPA) 오찬 행사에서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HFPA 회장이었던 유력 인사 필립 버크(Philip Berk)가 행사장을 빠져나가던 브렌던 프레이저의 신체를 강제로 추행한 것입니다. 190cm가 넘는 건장한 남성 스타였던 프레이저는 그 순간 극심한 공포와 수치심으로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눈물로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고, 소속사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버크는 "장난이었다"며 사과 편지를 보냈지만, 그 직후 벌어진 일은 끔찍한 보복이었습니다. 할리우드의 거물들은 피해자인 프레이저를 외면했고, 골든글로브와 메이저 영화사들은 그의 캐스팅을 조직적으로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는 줄줄이 취소되었습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15년간의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로 인해 프레이저가 입은 직접적인 출연료 손실만 최소 6,000만 달러(약 810억 원)를 웃돌았습니다. 여기에 오랜 신체 부상으로 인한 척추 후궁절제술, 무릎 인공관절 수술, 성대 수술 등 7년에 걸친 대수술이 이어지며 그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피폐해졌습니다.
수술로 인해 전성기의 완벽했던 근육질 몸매는 사라졌고, 만성 통증과 우울증 치료를 위한 약물 복용으로 체중이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9년 아내와의 이혼으로 인한 막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 그리고 사랑하던 어머니의 암 투병 사망 소식은 그를 완전한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미디어와 인터넷은 잔인했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꼽혔던 그의 달라진 외모를 조롱하며 '미이라 스타의 충격적인 근황', '배 나온 아저씨로 변한 조지'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2016년 한 인터뷰에서 힘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던 프레이저의 슬픈 눈망울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수많은 영화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인디 영화의 조연과 드라마 《DC 타이탄》의 목소리 연기라도 주어지면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상처와 진심을 알아본 한 명의 위대한 거장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레퀴엠》, 《블랙 스완》을 연출한 거장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10년 동안 영화화하지 못했던 연극 《더 웨일(The Whale)》의 주인공 '찰리' 역에 브렌던 프레이저를 낙점했습니다. 딸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 하는 272kg의 초고도 비만 환자 찰리는, 온 세상의 오해와 상처 속에서 살아온 프레이저의 실제 삶과 완벽하게 겹쳐졌습니다.
프레이저는 매일 4시간이 넘는 특수 분장을 견디며 45kg에 달하는 보철 수트를 입고 연기했습니다. 짓눌린 숨소리, 눈동자 하나에 담긴 참회와 사랑, 딸을 바라보는 절절한 눈물은 전 세계 영화계를 충격과 감동에 빠뜨렸습니다. 2022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상영이 끝난 후, 극장 안에서는 무려 6분 동안 눈물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고, 프레이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2023년 3월 12일,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브렌던 프레이저!"라는 발표가 울려 퍼지는 순간, 전 세계가 환호했습니다. 무대에 오른 그는 트로피를 손에 쥐고 오열하며 말했습니다. "깊은 바다 속에 갇혀 있다면, 빛을 향해 올라오십시오." 15년의 지옥 같은 고통을 딛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 브렌던 프레이저의 승리는, 현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동의 드라마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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