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 / 나이 | 1976년 5월 24일 (만 4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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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서울특별시 |
| 신체 / 혈액형 | 175cm, 65kg, O형 |
| 학력 |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
| 가족 관계 | 부모님, 3남 중 장남 / 미혼 |
| 데뷔 | 1995년 1집 앨범 [Chance] |
| 대표곡 | '풍요 속 빈곤', '비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
| 현재 직업 | 방송인, 요식업 대표 ('멜시보끔' 오너) |
| 1995년 | 1집 'Chance'로 가요계 데뷔 |
| 1996년 | 2집 '풍요 속 빈곤' 대히트, 맘보걸 댄스로 당대 청춘스타 등극 |
| 1996년~1997년 | 절친 서지원, 이원진의 잇단 사망으로 심각한 트라우마와 공황장애 발병, 연예계 활동 중단 |
| 2000년대 | 모든 연예계 인맥을 단절하고 압구정동에서 뚝배기 닦기부터 시작해 요식업 투신 |
| 2017년~현재 | SBS '불타는 청춘' 출연 및 압구정 '멜시보끔' 한식당 CEO로 안착 |
1996년 여름, 세련된 외모와 부드러운 미소의 김부용이 발표한 2집 타이틀곡 '풍요 속 빈곤'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습니다. 흥겨운 맘보 리듬에 맞춰 남녀 댄서가 호흡을 맞추는 콘셉트는 당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무대 뒤에서 춤을 추던 1대 맘보걸 이선정을 시작으로 2대 서유정까지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 후보에 오르며 전국 테이프 가판대와 라디오를 점령한 김부용은 당시 10대와 20대의 워너비 스타로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환호 뒤편에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1996년 1월, 김부용과 매일 밤 어울리며 속마음을 나누던 동갑내기 절친 가수 서지원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지원의 마지막 앨범 녹음 전날까지 함께 있었던 김부용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친구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또 다른 절친 이원진마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김부용의 정신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도 저쪽으로 따라갈 것 같다'는 극심한 공포와 심장 통증이 찾아왔고,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함께 어울렸던 가수 최재훈과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죽은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고통이었기에, 두 사람은 무려 20년간 서로 연락을 끊고 피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모든 연예계 인맥을 단절하고 은둔 생활을 하던 김부용을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어머니의 밥상'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압구정 골목에 작은 한식당 '멜시보끔'을 열었습니다.
스타라는 허세를 완전히 던져버린 그는 매일 새벽 가락시장에 나가 배추와 고기를 떼어왔고, 주방 바닥을 닦으며 손님들의 뚝배기를 날랐습니다. 정직하게 흘린 땀방울과 손님들의 따뜻한 칭찬 속에서, 오랜 세월 그를 옥죄던 공황장애의 사슬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SBS '불타는 청춘'에 합류한 김부용은 20년 만에 절친 최재훈과 마주 앉았습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원이가 떠난 후 형을 보면 지원이가 생각나서 만날 수가 없었다'며 오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오랜 트라우마를 눈물로 씻어낸 김부용은 현재 압구정에서 LA갈비와 코다리찜으로 유명한 맛집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반찬 브랜드까지 론칭해 탄탄한 요식업 대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혼의 깊은 상처를 정직한 노동으로 치유하고 일어선 김부용의 담담한 미소는 깊은 감동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지원이가 떠난 날, 나도 따라갈 것 같은 공포에 심장을 쥐어뜯었습니다. 20년 동안 친구의 기억을 피하며 도망쳤지만, 주방에서 매일 땀 흘려 밥을 지으며 비로소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제는 하늘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성실히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