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 / 나이 | 1981년 3월 10일 (만 43세) |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 신체 / 혈액형 | 168cm, A형 |
| 학력 | 영등포고등학교 졸업 ➔ 순천향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
| 가족 관계 | 부모님 이혼 후 고모와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 / 미혼 |
| 데뷔 | 1986년 MBC 드라마 [시사회] |
| 대표작 |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순돌이), '칼잡이 오수정',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
| 현재 직업 | 방송인, 무속인 |
| 1986년 | MBC 일요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의 '순돌이'로 데뷔, 백상예술대상 특별상 수상 |
| 1990년대 후반 | 드라마 종영 후 성인 배우 전향 시도했으나 '순돌이' 이미지 벽에 부딪혀 배역 단절 |
| 2010년대 | 극심한 생활고와 잊혀짐에 대한 공포로 대인기피증 및 극단적 우울증 투병 |
| 2023년~2024년 초 | 원인 불명의 신병(방울 소리 환청, 전신 마비성 통증, 환각) 발병 |
| 2024년 8월~현재 | 경기도 하남에서 내림굿 수락, 서울 삼성동에 신당 차리고 무속인과 방송 병행 |
1986년 방송을 시작해 1994년까지 8년간 방영된 MBC 일요아침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순돌이'는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닌 대한민국 어린이의 대명사였습니다. 통통한 볼살과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 '순돌이 아빠' 임현식과의 배꼽 잡는 부자 케미스트리는 매주 일요일 아침 시청률을 40% 가까이 끌어올렸습니다.
만 5세의 어린 나이에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거머쥐었고, 식품·완구·의류 등 당대 최고의 CF를 모조리 섭렵했던 이건주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개런티를 받는 아역 배우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터진 영광의 불꽃놀이는 성인이 된 이건주에게 가혹한 족쇄가 되었습니다. 자라면서 통통했던 체형이 변하지 않았고, 어떤 진지한 오디션을 보러 가도 감독들은 '너는 죽을 때까지 순돌이 이미지라 성인 배역은 못 쓴다'며 문전박대했습니다. 20대와 30대를 거치며 캐스팅은 완전히 끊겼고, 수중에 모아둔 돈도 바닥나며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이건주에게는 가슴 아픈 가족사가 있었습니다.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여섯 살 때부터 할머니와 고모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에게 고모는 낳아준 어머니보다 더 귀한 '두 번째 엄마'였습니다. 사실 이건주의 집안은 외증조할머니가 유명한 만신(무당)이었고 할아버지 역시 무속과 깊은 인연이 있는 영적인 집안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고모 역시 젊은 시절 신내림을 받아야 할 운명이었으나, 조카 이건주가 '순돌이'로 국민적 사랑을 받자 '내 조카의 앞길에 무당 고모라는 오명을 씌울 수 없다'며 평생 신내림을 눈물로 거부하고 조카 뒷바라지에 청춘을 바쳤습니다.
고모의 필사적인 거부에도 불구하고, 대를 이어 내려오는 영적 핏줄은 결국 이건주에게 당도했습니다. 2023년부터 이건주에게는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하는 극심한 신병(神病)이 찾아왔습니다. 밤마다 귀에서 방울 소리와 귓속말이 울려 퍼졌고, 온몸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과 환각이 겹치며 정상적인 호흡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었고, 극단적인 우울증으로 하루하루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보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선배 무속인으로부터 '이것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신의 부름이며, 받지 않으면 네 목숨이 위태롭다'는 점괘를 받았습니다. 2024년 8월, 경기도 하남의 한 굿당에서 내림굿이 거행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고모는 굿당으로 달려와 '내 새끼 순돌이가 왜 이런 길을 가야 하냐'며 이건주를 끌어안고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건주 역시 고모의 손을 붙잡고 오열하며 '고모,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가 없어'라며 신령님을 모시는 작두와 방울을 잡았습니다.
신내림을 마친 후 거짓말처럼 수년간 그를 괴롭히던 신체적 통증과 우울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정식 신당을 마련한 이건주는 MBN '특종세상'을 통해 무속인이 된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일각에서 '방송 복귀를 위한 어그로가 아니냐', '돈이 떨어져서 무당 행세를 하느냐'는 잔인한 악플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배우로서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시간도 감사하지만, 이제는 벼랑 끝에 몰려 나처럼 아파하는 사람들의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 신이 내게 주신 진짜 사명'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는 오랜 방황을 끝낸 자의 깊은 평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당당히 맞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건주에게 대중의 진심 어린 응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순돌이라는 이름에 갇혀 30년을 고통받았고, 원인 모를 신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습니다. 내림굿 날 저를 붙잡고 오열하던 고모를 보며 가슴이 찢어졌지만, 살기 위해 신을 모셨습니다. 이제는 방황하지 않고, 저처럼 삶이 힘겨운 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리겠습니다.”